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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6] 포스코의 '스피드 DNA' (끝)

모든 보고서는 한쪽 이내로…온라인 결재로 빠른 의사 결정 '현금 쌓아 놓고 투자 안 한다' 보수적 이미지 탈피도 2009년 3월. 취임 한 달이 채 안 된 포스코 정준양 회장이 신입사원들 앞에 섰다. 취임 후 첫 공식 연설에서 그는 '마시멜로 이야기'에 나온 '사자와 가젤'을 인용했다. "아프리카에서 매일 사자와 가젤이 눈을 뜹니다. 가젤은 사자보다 조금 더 빨리 달려 잡혀먹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사자가 이런 가젤을 잡아먹는 노하우는 가젤보다 조금 더 빨리 달리는 겁니다. 여러분 사자가 됩시다." 정준양호의 색채는 이 말에 잘 녹아들어 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정 회장은 포스코의 체질개선에 나섰다. 키워드는 '스피드'였다. 사내 의사결정은 물론 고객 응대 등 모든 면에서 속도를 낼 것을 독려했다. 공급보다 수요가 넘치는 국내 철강시장의 특성상 그동안 편하게 먹이를 먹던 공룡에게 '살 빼고 뛰라'고 주문한 것이다. 정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경영관리 주기를 분기에서 월 단위로 단축한 것이나 모든 보고서를 1쪽으로 줄이고 모든 간부와 영업직원에게 스마트폰을 지급해 대면결재를 온라인 결재로 바꿔나간 게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 빠른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어 고객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라는 주문이다. 그는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무리다는 말은 하지 말라. 일단 시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월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포스코의 현금성 자산이 6조원이 넘는 등 재무구조가 탄탄해 '승자의 저주'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오히려 그동안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는 보수적 경영에서 벗어난 것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개발독재 시대에 제철보국의 기치를 내걸고 설립된 포스코는 상명하복과 일사불란의 분위기가 강했다. 직원들이 회장과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요새 포스코는 분명 바뀌고 있다. 관리위주의 상의하달식 의사결정을 지양하고 소통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매달 보고와 지시 중심으로 진행되던 회의를 토론식으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사보에서 정준양 회장이 직원들에게 상사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하우를 공개할 정도로 분위기는 자유로워졌다. 포스코에 스피드와 효율.소통.경쟁의 DNA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변한 마케팅에서 잘 드러난다. 정 회장은 틈날 때마다 "포스코 마케팅팀은 지금까지 항상 모자라는 제품을 배분한 것이지 고객 만족 마케팅을 해본 적이 없다"며 "앞으로는 고객과 회사의 이익이 상충할 때 회사의 이익을 버리고 고객의 신뢰를 얻으라"고 말한다. 포스코가 마케팅과 제철소 조직을 통합해 탄소강 사업부문을 신설한 것도 마케팅과 생산 간의 유기적 협업을 통해 보다 빠르게 고객의 소리에 대응하기 위한 시도다. 체질을 바꾸고 있는 포스코는 금융위기에 빛을 발했다. 조강생산량 기준으로는 세계 4위지만 글로벌 경쟁력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세계적 철강전문 분석기관 WSD(World Steel Dynamics)는 지난 4월 전 세계 철강사 32개사를 대상으로 총 23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 포스코를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로 선정했다. 2004년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1위 철강사 아르셀로미탈이 지난해 적자 전환하며 허우적대는 사이 포스코는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 WSD는 포스코가 전사적 원가절감과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양호한 경영성과를 거둔 것을 높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금융위기에도 연구개발(R&D)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2007년 3032억원이던 R&D 투자비는 2008년 4427억원 2009년 4543억원으로 계속 늘었다. 올해는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감한 투자는 싼 원재료로 고품질의 철강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으로 그리고 이 기술력은 다시 원가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포스코는 2006년 이후 매년 1조원 이상 원가를 절감하고 있다. 올해도 1조1500억원의 원가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자세 무사안일의 공기업 생리에 머물렀다면 이런 성과를 내기 힘들었다. 달라진 DNA는 해외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철강 본업의 토대 위에 종합소재.에너지 등 신성장 동력 사업을 적극 개발하기 위해 인도와는 2005년 인도네시아와는 2009년부터 각각 1200만t과 600만t의 일관제철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철강업계의 경쟁력은 철광석.원료탄 자급도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고 해외 자원 확보에도 힘쓰고 있는 것이다. 정준양 회장이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해외자원 확보를 위해 다닌 비행거리만 32만㎞가 넘는다. 하지만 포스코의 개혁은 아직 미완성이다. 외국인 주주 지분이 48.77%인 글로벌 민간기업이지만 공기업 성격이 여전히 남아 있다. 오너가 없다 보니 몇 년마다 바뀌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서 외풍에 약하고 과감한 결단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만 상무는 "조직 내에 신뢰의 문화를 확산하고 스피드 DNA를 접목하면 포스코가 추구하는 3.0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리 기자

2010-10-01

[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5] 롯데의 '글로벌 DNA'

M&A로 내수, 글로벌 영토확장…계열사 대표 50대로 세대교체 인사팀 40% 해외인재채용 투입…"운전사 왜 한국인 쓰나" 불호령 지난해 3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롯데그룹의 '2018년 아시아 톱10 글로벌 그룹 비전 선포식'. 신동빈 부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비전 실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 비전은 신 부회장 주도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컨설팅을 거쳐 수립됐다. 2018년 매출 목표를 200조원으로 잡았다. 현재 그룹 매출은 45조2000억원. 현재 4%인 해외 매출 비중도 2018년 전체 30%인 60조원까지 끌어올리려 한다. 그러려면 내수 중심인 회사 조직과 문화를 글로벌 DNA로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국내외 안 가리는 M&A= 롯데는 2000년대 들어 숨가쁜 인수합병(M&A)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M&A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2000년 이후 성사시킨 M&A 23건 중 해외 M&A가 중국.인도네시아 마크로 벨기에 길리안 초콜릿 중국 타임스 등 4건이다.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롯데는 역량이 있지만 실행은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2018 비전 수립 후 목표가 뚜렷해지면서 의사결정도 빨라졌다"고 말했다.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내부 유보금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차입을 활용한다. 예전의 롯데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신격호 회장의 지론인 '거화취실(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과는 사뭇 다르게 그룹의 DNA가 글로벌.공세로 바뀌고 있다. 보수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DNA가 그룹 내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성장이 한계에 달한 식품.유통업을 탈피해 사업을 다각화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려면 M&A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방향은 적절하게 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M&A는 필연적으로 직접 뛰어들어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보다 돈이 많이 드는 방식"이라며 "그간 롯데가 사들인 기업들의 인수가격이 적당한지에 대한 판단은 몇 년을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라"= 롯데는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대신 핵심 전략지역으로 VRICs(베트남.러시아.인도네시아.중국)라는 표현을 쓴다. VRICs를 잘 아는 인력을 확보하고 현지를 이해하는 데 그룹의 성패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신동빈 부회장이 "지점장들 편하자고 운전기사를 한국인으로만 쓰면 어떻게 현지 사회를 이해하고 공감을 얻겠느냐"고 그룹 임원회의 때 불호령을 내린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내수에 치중하던 2006년만 해도 손에 꼽을 정도였던 해외 인력은 현지 채용인을 포함해 약 3만여 명으로 늘었다. 2007년 러시아에 백화점을 개점할 땐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인력이 부족해 파견 직원을 찾는 데 고생했다. 지금은 VRICs 지역 연수를 마친 직원들이 1000여 명에 달한다. 이외에도 4~5명이 한 조가 돼 VRICs 국가를 가본 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브릭스 연구회'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룹 인사팀장 윤종민 상무는 이달만 해도 미국 시카고→중국 상하이.베이징→베트남 하노이.호찌민을 거치는 강행군을 했다. 그룹 인사팀 인력의 40%는 해외 인재를 뽑는 임무에 투입되고 있다. 최소한의 인원만 파견하고 현지에서 인력을 키운다는 원칙으로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현지 대학생 신입사원을 공채로 뽑는다. 중국은 4년째 베트남은 2년째다. 채용된 해외 신입사원들은 10개월 동안 한국에 와서 연수를 받는다. ◇젊고 공격적인 기업으로= 롯데의 계열사 대표는 전통적으로 60세 이상이 주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계열사 대표에 50대가 눈에 많이 띈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백화점에는 40대 임원도 등장했다. 롯데마트는 임원의 10% 정도는 40대다. 요즘 웬만한 회사에선 찾기 힘든 '계장' 직함은 올 5월 없애고 대리로 바꿔 달았다. 그룹 전체 임원 중 20%는 외부 수혈 인력이다. 그룹 관계자는 "롯데의 정체성을 깨보자 하이브리드로 가보자는 시도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 승진 중 5%인 발탁 승진 비율을 10%까지 늘려나갈 방침이다. 2005년 대졸 공채 중 여성은 10%대에 그쳤으나 지금은 30% 수준으로 늘었다. 신 부회장이 "여성들을 그만큼 뽑아서 되겠나. 더 뽑아야 하지 않나"라며 직접 챙기고 있다. 실적에 따른 보상도 도입됐다. 롯데백화점의 한 직원은 "롯데는 월급 적게 주는 대신 오래 다닌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적어도 적게 준다는 것은 옛말"이라며 "간부급의 경우 3년 연속 해마다 수천만원씩 성과급을 손에 쥐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과제= 식품.유통업 모두 글로벌 강자들과의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세계적 백화점인 일본 이세탄도 해외 진출 1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을 정도로 글로벌 유통시장에서 성공하는 게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롯데쇼핑 주가가 좀처럼 공모가(40만원)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다분히 '롯데 디스카운트' 때문"이라며 "보수적이고 비밀스러운 그룹의 이미지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DNA를 심는 데 성공한다면 주가도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한 번에 다 바꾸긴 힘들겠지만 경영층이 '하다가 실패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된다'란 말을 수시로 할 정도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지영 기자

2010-09-24

[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4] LG의 '도전 DNA'

이 회사는 6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2002년부터 줄곧 600억원 안팎의 R&D 투자를 해왔다. 번 돈보다 더 많이 R&D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원천기술 개발에 승부 걸어…구본무 "나는 하면 끝까지 한다" 단기 성과 없어도 문책 안 해…편광판·2차전지 성공모델 확산 R&D의 성과는 금방 나오지 않는다.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신약 '팩티브'처럼 일부 결실도 거뒀지만 쏟아부은 돈에 비하면 미미하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성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도 매년 수백억원을 R&D에 투자하고 있는 LG생명과학은 LG의 DNA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인화(人和)'와 '정도(正道)'를 강조해온 LG에 '도전 DNA'가 자라고 있다. 도전 DNA는 LG를 단련시켰다. '일등 LG'를 목표로 설정하고 그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도전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LG는 집요하고 끈질겨졌다. 평소 "나는 뭐든지 하면 끝까지 한다"고 이야기하는 구본무 LG 회장이 이런 DNA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될 때까지 한다"= 편광판.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 액정화면(LCD)에 쓰이는 광학필름이다. 디지털 가전제품 시장과 함께 커가는 핵심 소재다. 1990년대 후반 편광판은 일본 회사 3곳만이 만들고 있었다. LG화학은 이들에게 기술 이전을 요청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LG화학은 독자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고난의 연속이었다. 어렵게 제품을 개발했으나 품질이 불안했다. 사활을 걸고 매달린 끝에 2002년 초 일본 제품의 품질을 따라잡았다. LG화학은 2009년 편광판 시장 부동의 1위였던 일본 니토덴코를 제치고 세계 1등이 됐다. 2000년 연 60억원의 매출로 시작했던 편광판 사업은 2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2차 전지는 더 극적인 경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국정 연설에서 "신형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조립라인을 돌고 있지만 이들 자동차는 한국산 배터리에 의해 구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한국산은 LG화학의 리튬이온 전지였다. 한 달 전 미국 GM사에 전기자동차용 전지 공급업체로 단독 선정된 것을 두고 한 얘기였다. LG화학은 올 11월부터 GM에 납품을 시작한다. 1998년 2차 전지 시장에 뛰어든 지 10여 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역설적으로 10여 년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해왔다는 얘기다. 불가능해 보였던 2차 전지와 편광판의 성공은 직원들의 눈빛을 바꿔놓았다(김반석 부회장의 평가). 60여 년간 국내 시장 1위에 젖어 느슨해졌던 분위기가 싹 가셨다. LG전자는 도전자 기질을 십분 발휘했다. TV시장에선 소니(세계 2위)를 휴대전화 시장에선 모토로라(세계 3위)를 생활가전에선 월풀(세계 1위)을 각각 따라잡았다. 그룹의 두 축인 LG화학과 LG전자의 변화는 도전 DNA를 그룹 전반으로 퍼뜨렸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과거 LG가 변화에 소극적인 보수적 색채가 진했다면 두 차례 위기를 겪어낸 지금은 도전과 혁신을 즐기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LG의 요즘 화두는 '원천기술 확보'다. 올 2월 경기도 이천 LG인화원(LG그룹의 교육기관). 구본무 회장은 계열사 전무 승진자 30여 명에게 "기술 자립을 못하면 생존할 수 없고 기술을 가진 기업에 수모를 당하게 된다"면서 "영속적인 기업이 되려면 1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는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천기술 개발은 결코 쉽지 않다. 몇 년이 걸리든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전 DNA로 무장해야 가능한 일이다. 도전 DNA가 확산되려면 중요한 조건이 있다. 인내다. CEO가 상사가 기다려줘야 한다. 무수한 실패와 오랜 실적 부진에도 직원들을 다독여줘야 한다. 그 정점에 구 회장이 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구 회장에 대해 "정말 끈질기게 기다려준다"면서 "잘못이 있어도 사람을 바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구 회장과 LG전자 경영진과의 컨센서스 미팅(CM)이 상징적인 경우다. 스마트폰의 부진 등으로 실적이 크게 악화된 LG전자 경영진은 질책을 각오했다. 구 회장은 "주눅들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하라"고 말했다. 문책 대신 격려를 통해 더 줄기찬 도전을 요구한 셈이다. 2등 3등이 1등을 잡으려면 도전은 불가피하다. 통합LG텔레콤이 최근 'LG유플러스'로 사명을 고치고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은 것도 KT와 SK텔레콤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통신시장은 포화상태고 3등인 우리로선 과감한 도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는 도전 DNA를 장려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독특한 평가 시스템이다. LG는 CEO나 임원 평가시 단기 실적에 대한 평가와 중장기 비전에 대한 평가를 따로 한다. 인센티브도 단기와 중장기 따로 준다. 눈앞의 실적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는 의미다. ◇속도감을 높여야= LG는 가끔 시장의 변화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기껏 열심히 쫓아가 놓고도 변화의 길목에서 멈칫하는 사이 선발 업체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과 일반 휴대전화로 양분되는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경영진은 오히려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될지 좀 더 지켜보고 대응하기로 전략을 짰다. 3D TV시장 진출도 반 걸음 늦었다. 기술은 있었지만 결정을 미루었다. 역시 DNA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LG의 전통적 DNA인 '신중함'이 요즘 같은 스피드 시대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애널리스트는 "LG는 신중하고 의견 조율 과정이 많다 보니 급변하는 대외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떨어진다"면서 "민첩성을 더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2010-09-17

[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3] SK의 '공격수 DNA'

신입 70행군, 무인도 워크숍…'강한 문화' 위해 도전정신 심어 "밖에서 구경 말고 비전 공유를" 임원회의 내용 인트라넷 공개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지난해 말 중국 베이징.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럴 만도 했다.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SK그룹은 1999년 말 베이징에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21명이 참석한 세미나를 열었다. 당시 나왔던 전략이 ‘중국 중심의 세계화’다. “계열사가 각각 추진하던 중국 사업의 시너지를 높이고, 중국화된 기업을 만들겠다”는 발표도 했다. 꼭 10년 뒤인 지난해 말 베이징에서 다시 CEO 세미나가 열렸다. 전략·대책 모두 과거와 같았다. “중국 정부의 규제로 사업 확대가 쉽지 않다”는 푸념까지 똑같았다. 최 회장은 “앞으로 10년 뒤 베이징에 다시 모여도 같은 말을 할 것이냐”며 답답해했다. 내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SK에 중국 시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올해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소 잦아들자 SK그룹은 사업구조·조직문화의 DNA를 확 바꾸겠다고 나섰다. 베이징 사건이 주요 계기 중 하나였다. ‘파부침주’란 구호도 내걸었다. 밥 지을 솥을 깨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배수진’이다. ◆닫힌 ‘성장판’ 열어라= SK그룹의 주력 사업은 에너지(SK에너지)와 이동통신(SK텔레콤)이다. 양쪽 모두 국내 1위다. 하지만 세계 무대에선 사정이 다르다. SK에너지는 74위, SK텔레콤은 47위(가입자 수 기준)다. 국내 사업 환경도 녹록지 않다. 특히 이동통신은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정치권·시민단체에선 요금 인하 압력이 쏟아지는데 경쟁 격화로 마케팅 비용은 계속 들어간다. 가입자 포화로 손님을 더 늘리기도 어렵다. SK텔레콤은 2003년 9조원대 중반이던 매출이 지난해 12조원을 넘겼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3조807억원에서 2조1793억원으로 되레 1조원 가까이 줄었다. 에너지도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한국 정유·화학사의 생산 능력은 이미 국내 수요를 훨씬 넘어섰다. SK에너지도 수출 비중이 50%가 넘는다. 그런데 원유만 팔던 중동 산유국과 한국 제품을 많이 수입하는 중국 등이 앞다퉈 정유·화학 공장을 짓고 있다.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이 “이대로 가다간 내 자리 지키기도 힘들다”고 말한 이유다. SK그룹은 2002년부터 ‘투비(To Be)’ 모델이란 이름으로 3년 단위의 중기 경영전략을 짜고 있다. 첫 3년인 2002~2004년은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 등으로 ‘생존’이 최대 화두였다. ‘미래 목표’를 뜻하는 투비가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의 투비가 됐다는 뜻이다. 2005~2007년은 성장 기반 조성이 목표였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3차 투비’ 기간인 2008~2010년은 본격 성장의 시기가 됐어야 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천천히 죽어가는 ‘슬로 데스(Slow Death)’ 상황을 맞아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정에서 성장으로 ‘유전자 변이’= 최 회장은 요즘 “앞으로의 SK가 과거의 모습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종종 말한다. 이달 초 SK그룹이 신에너지, 산업혁신 기술 개발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2020년까지 17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더 이상 정유·이동통신 중심의 사업구조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SK가 공을 들이는 것 중 하나가 조직문화 혁신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계열사 CEO 워크숍에서 “변화의 흐름에 맞는 강한 문화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성장을 위해선 조직문화부터 이에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최 회장은 ‘강한 문화’를 얘기할 때 중국의 예를 종종 든다. “역사 속에서 중원을 지배한 민족이 계속 바뀌었지만 결국 가장 강한 문화를 지닌 한족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강한 문화를 위한 SK그룹의 첫째 전략은 ‘공유’다. 회사 구성원들이 절박감을 느껴야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간 SK가 변화를 외칠 때마다 경험했던 일이기도 하다. 한 SK 계열사의 간부 사원은 “그동안은 경영진이 변화를 외쳐도 ‘우리 회사는 사업구조가 안정적인데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회사 구성원과의 공유를 위해 SK텔레콤 정만원 사장은 자신을 포함한 고위 임원들이 참석한 성장전략 회의 내용을 회사 내부 인트라넷에 올리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정 사장과 이명성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10여 명이 참석한 성장모델 회의 내용을 올렸다. 여기에도 “(조직원과 이해관계자들이) 밖에서 구경하지 않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SK에너지의 유정준 R&M CIC(정유·마케팅 사업) 사장은 올해 울산·인천 공장과 싱가포르·베트남 등 해외 사업장을 합쳐 10번 넘게 출장을 갔다. 역시 회사가 변화하려는 방향을 알리고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다. 인재관도 확 달라졌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새 성장을 해야 할 SK에는 명문대 간판보다는 진취적 태도를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자영 SK에너지 사장은 최근 기자에게 “주어진 환경에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곤란하다”며 “이런 사람은 말로 안 해도 얼굴에 다 드러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이 올해 신입사원들에게 70㎞ 행군을 시키고, SK에너지가 신입사원 무인도 워크숍을 했던 것도 도전정신을 키우기 위해서다. CEO부터 신입사원까지 변화를 위해 뛰면서 SK의 조직문화는 전보다 훨씬 적극적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경영진의 회의 내용이 올라오면 금세 조회 수가 1000~2000건을 기록한다. “성장을 위해선 모두가 힘을 모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장 필요하다”는 등의 응원 댓글도 붙는다. 그룹 관계자는 “구성원의 DNA가 안정 지향형에서 성장 추구형으로 바뀐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2010-09-10

[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2] 현대·기아차의 '소프트 감성 DNA'

#1 현대.기아자동차는 순혈주의를 깨기 위해 외부 인재 스카우트에 열심이다.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키워진 인력만으로는 급속히 불어난 해외 공장.영업망을 커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기아 출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타성에 젖은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해외시장서 고속성장 거듭 2015년 세계 톱3 도약 노려 "한국서 더 정성 들여야" 지적도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은 지난달 29일 도요타미국 판매담당 임원 출신인 마이클 오브라이언을 제품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본사 해외마케팅 총괄인 마케팅본부장에는 조원홍 전 모니터그룹코리아 대표를 발령냈다. 현대차 본부장급(전무급 이상)에 외부 인사가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아차도 올 3월 프랑스 화장품회사인 로레알에서 일하던 채양선씨를 마케팅담당 상무로 영입했다. 외부 수혈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2 기아차는 자동차 업체로는 드물게 지난달 '공간 아이덴티티(SI:Space Identity)'를 도입했다. SI는 고객과 만나는 접점인 전시장.서비스센터뿐 아니라 임직원들의 사무공간 디자인 가구 배치 컬러에 이르기까지 공간과 시설에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한 것이다. 우선 전시장을 싹 바꿨다. 통유리 건물에 기아의 상징인 빨간색을 접목한 '레드 큐브(육면체:Cube)'가 테마다. 내부는 흰색.붉은색.밝은 회색으로 단순화해 깔끔하고 밝은 이미지를 줬다. 자동차 경주장을 연상시키는 타원형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하면 된다'에 감성 접목= 현대그룹의 창업정신인 '하면 된다'를 계승한 현대차의 경영 스타일은 판매 신장을 위주로 한 공격 일변도였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톱5'로 발돋움하면서 소프트한 감성경영을 접목하고 있다. 그간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DNA를 덧입힌 것이다. 톱5를 넘어 2015년께 도요타.폴크스바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톱3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공격경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2012년 해외 350만 대 국내 300만 대 생산체제를 갖추고 연간 600만 대 이상을 꾸준히 판매하려면 소비자의 감성을 읽고 이를 토대로 품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게 선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광고의 변화다. 그동안 동급 최대마력 동급 최다 에어백 등 숫자로 나열하는 방식에서 탈피했다. 자동차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현대.기아차를 타면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감성으로 접근했다. 남아공 월드컵 광고에서 현대차는 한 대의 차도 등장시키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느끼는 환희를 현대차에서도 똑같이 맛볼 수 있다며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동차 업계의 승자는 현대.기아차와 포드가 꼽힌다. 현대.기아차는 환율 효과를 본 데다 경쟁업체인 도요타의 대량 리콜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지난해 1월 HMA가 도입한 '실직자 보상 프로그램'은 세계 자동차 마케팅에 남을 기록이 됐다. 당시 신차를 구입하고 1년 이내에 실직했을 경우 차량을 반납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지난해 미국에서 전년보다 9% 증가한 43만5064대를 팔았다. 상위 10위권 자동차 업체 가운데 지난해 유일하게 판매가 늘어난 업체가 됐다. 올 상반기 해외 판매는 현대차가 144만210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늘었다. 기아차는 76만2072대로 역대 최고치인 62% 급증했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최고의 판매 증가율이다. 내수를 포함한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전체 판매는 275만 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34% 증가했다. GM.도요타.폴크스바겐.포드에 이어 세계 5위의 판매량이다. ◇해외 생산기지 확장= 2012년이면 중국 130만 대 등 해외에만 연산 350만 대의 생산기지를 확보한다. 세계 자동차 역사상 최단기간에 300만 대가 넘는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가운데 해외에 연산 300만 대 공장을 보유한 업체는 도요타.GM.폴크스바겐그룹 등 3곳뿐이다. 현대.기아차는 국내와 합치면 연산 650만 대로 도요타.GM에 이어 세계 3위권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요코하마국립대 조두섭(경영학) 교수는 "70년대 후반 미쓰비시자동차로부터 기술을 배웠던 현대차가 기술 독립을 통해 2000년 이후 10년 만에 300만 대가 넘는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한 것은 산업사에 남을 성과"라고 평가했다. ◇톱3의 선결과제= 조직에는 아직 예전의 문화가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현대.기아차는 외부 인재 수혈에 나서고 있다. 조직문화 개선에는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40) 부회장이 중심에 서 있다. 부회장단 가운데 가장 젊은 김용환(53) 기획조정 담당이 뒤를 받치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06년 기아차 유럽법인장 시절 디자인 경영을 이끈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 담당 부사장의 스카우트를 맡았다. 이처럼 해외에서 선전하고 새로운 DNA를 덧입히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한 면이 있다. 자동차 조사기관인 마케팅인사이트의 조사에서 국내 고객만족도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차가 나올 때마다 가격이 오르는 게 국내 소비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그 결과 국내 대형차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수입차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에쿠스.제네시스.오피러스 등 대형차와 벤츠.BMW 등 프리미엄 수입차의 가격차가 5% 이내로 좁혀지면서 올 상반기 대형차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35%를 넘어섰다. 유진증권 박상원 애널리스트는 "내수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기아차가 해외시장만큼 국내에서도 정성을 들여야 지금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2010-09-03

[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1] 삼성의 '세계 1등 DNA'

"위기를 기회로 삼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 2009년 1월 21일. 금융위기가 최고조일 때 삼성전자가 던진 출사표다. 그해 말 이 각오는 현실이 됐다. 휼렛패커드를 제치고 전자.정보기술(IT)분야 '글로벌 1등'으로 올라선 것이다. 국내 1등과 세계 1등 사이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의 주축이자 DNA 발전소다. 삼성전자의 1등 경험과 DNA가 그룹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연함과 자신감 속도가 새로운 삼성 DNA의 핵심이다. "지금이 진짜 위기"라는 이건희 회장의 위기론은 그 DNA를 계속 담금질하고 있다. ◇조직의 벽을 부수다= 삼성은 2006년 'TV일류화위원회'를 구성했다.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자부문의 최고경영진 40여 명이 망라된 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TF)였다. 이건희 회장의 지시였다. TF는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TV 화질을 좌우하는 반도체 개발에만 엔지니어 500여 명이 매달린 것도 TF의 결정이었다. 그렇게 탄생된 보르도 TV를 시작으로 삼성은 세계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성은 지금 TF가 만개하고 있다. 계열사 어디서나 크고 작은 TF들이 활동 중이다. 2009년 10월 냉장고 리콜사태를 수습한 것도 아이폰 대항마인 갤럭시S를 개발한 것도 TF다. 조직체계를 뛰어넘는 TF를 통해 조직의 벽을 부수고 있는 셈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TF들이 운영되는 데다 관련 임원 말고는 누가 어떤 TF에 파견됐는지 모르기 때문에 TF의 전체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관리의 삼성에서 한결 유연한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 착안점은 '실용'이다. 기존에 누가 사업을 해왔는지는 별 의미가 없다. 해당 업무를 가장 잘하는 곳에 일이 배당된다. 카메라 사업이 좋은 예다. 애초 삼성테크윈에서 하다가 2009년 3월 삼성디지털이미징으로 분리돼 나왔다. 1년여 만에 삼성전자의 디지털이미징사업부로 합병됐다. 삼성 관계자는 "카메라에 반도체 기술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해 삼성전자와 합친 것이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애플 아이패드의 대항마로 개발 중인 S패드(가칭)는 컴퓨터사업부가 아니라 휴대전화를 만드는 무선사업부에서 개발 중이다. S패드의 성격이 스마트폰과 유사점이 많기 때문이다. 조직 수술은 일상사가 됐다. 필요하면 사업부 전체를 뗐다 붙인다. 1990년대엔 5~6년마다 2000년대 들어선 3년 주기로 이뤄지던 조직개편이 글로벌 위기 기간엔 매년 일어났다. ◇더 빠르게= 삼성 직원들이 글로벌 위기 이후 가장 달라진 것으로 꼽는 것은 속도다. 삼성은 이전에도 의사결정이 늦지 않은 조직이었다. 지금은 더 빨라지고 현장을 더 중시한다. 삼성전자는 2009년 서울에 있던 기획 디자인 마케팅 인력을 연구개발(R&D) 인력이 있는 현장으로 배치했다. 수시로 만나 해결점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최고경영자(CEO)인 최지성 사장은 본사(서울 서초사옥)에 있던 집무실을 공장이 있는 경기도 수원으로 옮겼다. 의사결정을 현장에서 바로 내리기 위해서다. 공급망관리시스템(SCM)도 무섭게 진화했다. TV나 휴대전화 등 신제품을 전 세계에 동시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신제품 효과는 그만큼 증폭된다. 전 직원은 자기 자리에서 전 세계의 실적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삼성그룹 내부에선 '초(超)격차'란 말이 자주 사용된다. 2등 3등이 따라올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격차를 벌리라는 말이다. 5월 반도체 분야의 26조원 투자 결정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금융계열사의 한 임원은 "2등 3등의 실적을 합친 것 이상의 실적을 내는 것이 목표"라면서 "과거엔 단순히 양적인 1등을 추구했다면 앞으로는 양과 질을 모두 중시하는 쪽으로 변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절대품질 추진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경쟁업체보다 나은 제품이 아니라 완벽에 가까운 제품을 만들어 품질에 관한 한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추종자(follower)'에서 '선도자(leader)'로= 시장에서 게임의 법칙은 1등이 만든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애플이 반도체 D램에선 삼성이 표준을 만든다. 17분기 연속 세계 1위인 TV도 그런 경우다. 삼성은 2009년 3월 두께 29mm의 LED TV를 출시했다. 세계 최초였다. 화질은 선명하고 에너지 효율은 높았지만 LCD TV보다 700~800달러가 더 비쌌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던 시기에 더 비싼 TV를 내놓는 것은 모험이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1년 만에 260만 대가 팔려나갔다. 해가 바뀌자 모든 TV 메이커들이 LED TV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은 다시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3D TV였다. 올 2월 3D TV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세계 TV 시장은 순식간에 3D 시대로 바뀌었다. 1등이 아닌 분야에선 과감하게 정면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삼성은 아프리카에 본격 진출했다. 아프리카는 휴대전화 글로벌 2등인 삼성이 1등인 노키아와 가장 격차가 벌어진 지역이다(노키아 70% 대 삼성 18%). 삼성 관계자는 "삼성은 그동안 북미 유럽 등 절대적 사업자가 있는 시장에서는 잘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약했다"면서 "삼성이 아프리카로 간 것 자체가 새로운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말했다. ◇창의성의 한계를 넘어야= "삼성은 기존에 있는 제품을 개선시키는 데는 탁월하다. 반도체도 휴대전화도 3D TV도 다 기존에 있던 기술이었다. 그러나 소니의 워크맨 애플의 아이폰처럼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삼성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삼성의 약점이다. 창의성 부족은 삼성의 아킬레스건이다. 기업문화는 기존의 발상을 뛰어넘는 도전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애플과의 스마트폰 경쟁에서 뒤지고 있는 이유다. 40년간의 제조업 사고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용화 수석연구원은 "삼성이 글로벌 1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 문화가 직원 의 창의성을 살리고 지원하는 쪽으로 더욱 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렬 기자 [email protected]

2010-08-27

한국 대표기업 DNA 달라졌다…획일·수비·모방서 유연·도전·창조로 변신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출 63조원→118조원 영업이익 5조9000억원→14조~15조원. 삼성전자의 2007년 실적과 올해 추정치(본사 기준)다. 불과 3년 만에 이렇게 커졌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글로벌 금융위기 삼성전자엔 글로벌 1등으로 올라서는 기회가 됐다.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 LG전자 포스코 등 한국의 대표기업들은 금융위기를 글로벌 초일류 기업 대열에 합류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했다. 현대.기아차는 프리미엄 승용차 메이커로 발돋움했다. 세계 최대 격전장인 미국시장 점유율이 6월에 8.5%에 달했다. 사상 최고치다. LG전자는 TV에서 소니를 제친 데 이어 냉장고.세탁기 등 생활가전 부문 세계 1위가 됐다. 포스코는 중국의 거센 견제 속에서도 세계 4위(조강 생산량 기준)로 올라섰다. 지난해 대표기업들의 선전을 두고 '환율 효과'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원화가치 하락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덕을 톡톡히 봤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화가치가 강세로 돌아선 올해는 힘들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올해 한국의 대표기업들은 지난해보다 실적이 더 좋아졌다. 전문가들은 두 차례의 위기(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대표기업들의 DNA가 달라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획일.수비.안전.모방 위주였던 DNA가 유연.공격.도전.창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표기업들의 기초체력이 한 단계 높아진 데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경을 넘어 유연하고 공격적으로 경영한 결과"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추종자(follower)'에서 '선도자(leader)'로 변신 중이다. LED TV와 3D TV 등을 세계 최초로 내놓았고 반도체 D램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애플에 뒤진 것을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고비가 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는 '하면 된다'는 특유의 뚝심에 감성을 덧입혔다. 디자인과 브랜드 파워 강화에 회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를 비롯한 신제품 시장에서 1등 품질 달성이 과제"(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다. SK의 DNA는 내수 위주의 안정에서 성장으로 1등 산업(에너지.통신)을 지키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변이가 일어나고 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주력사인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이 갈수록 줄어드는 등 정체를 맞은 그룹의 성장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숙제"라고 말했다. LG는 2차전지에서의 성공을 밑거름으로 도전 DNA가 확산되고 있다. 당장은 스마트폰에서 나타나고 있는 실패를 극복해야 한다. 롯데는 보수적 DNA를 뜯어고치는 수술이 한창이다. '글로벌'과 '혁신'을 화두 삼아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내수 위주의 DNA를 벗어나는 게 관건이다. 포스코는 '철의 제국'에서 철강 외길을 버리고 '글로벌 종합소재 왕국'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상렬.김선하 기자

2010-08-20

삼성 변화의 중심은 소통, 직원 이메일 받고 24시간 내 답신하는 사장도…

일본의 한 경제전문잡지는 올 2월 삼성 기업 문화의 특징으로 '상의하달(上意下達)'과 군대식 분위기를 꼽았다. 하지만 이 분석은 최근 삼성의 변화를 포착하지 못했다. 현재 삼성 기업문화의 최고 키워드는 '소통'이다. 임직원과도 소통이고 세상과도 소통이다. 삼성은 소식을 임직원에게 먼저 알리고 있다. 올 3월 이건희(사진) 회장의 복귀 소식은 언론 발표 전에 전 세계 25만 명의 임직원이 이용하는 사내 인트라넷 '마이싱글'을 통해 먼저 전해졌다. 5월 말 이 회장과 하워드 스트링거 소니 회장의 회동 장면도 삼성 사내방송을 통해 전달됐다. 당시 외부에 잘 공개하지 않는 이 회장의 집무실 승지원의 전경도 방송됐다. 4월에 삼성은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 '삼성을 생각한다'의 주장을 마이싱글을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삼성이 침묵을 깨고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과거의 삼성은 논란 확산을 우려해 비난과 비판에 대해서도 공식 반응을 자제했었다. 이후 삼성은 백혈병 발병 논란과 관련된 의혹을 풀기 위해 회사의 심장부인 기흥 반도체 공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대중에게도 문을 열어젖혔다. 그룹 트위터(@samsungin)와 블로그(samsungblogs.com)를 통해 실시간으로 삼성의 소식을 전하고 네티즌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계열사들도 소통이 화두다. 최고경영진과 직원들의 만남이 부쩍 늘었다. 삼성SDI 최치훈 사장은 직원이 e-메일을 보내면 24시간 안에 답장을 한다. 삼성전자.삼성LED 등은 자체 트위터를 운영 중이다. 소통은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소통 부재의 불통(不通)문화는 회사의 주력이 된 젊은 세대들의 사기를 꺾었다. 삼성 관계자는 "자유분방한 20~30대 직원들은 회사 소식을 외부에서 듣게 되는 풍토 때문에 회사와의 단절감을 느꼈고 상명하복의 일방적 문화에 좌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불통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도 소통은 절실했다. 회사와 직원 동료와 상하 간 소통이 이뤄져야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찾으려면 고객과의 소통이 절대적인 법이다. 소통은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갤럭시S 개발 태스크포스(TF)가 개발과정에서 전 세계 사용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제품을 개선한 것이 한 사례다. 삼성은 앞으로 소통을 더욱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소통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소통 통로가 추가되는 등 그룹 차원의 노력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201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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